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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6 14:22

백선엽의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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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필건 ㅣ 전 교육부 사학혁신위원

 

첫 육군 대장인 고 백선엽씨의 현충원 안장을 둘러싸고 그의 친일 경력이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백선엽은 단군 이래 최대 사학비리로 불린 선인학원 사태에도 일말의 책임이 있는 인물이다.

 

서울 강남 은마아파트 31평이 1847만5천원에 분양된 1980년. 약 5700명의 학생을 정원 외로 부정입학 또는 편입시키고, 졸업장을 팔아 61억원을 받아 챙긴 사학이 있었다. 학교를 짓는다며 월남 피란민 판자촌을 철거해 원성을 샀고 확장을 이유로 중국인 공동묘지를 불도저로 밀어 외교 문제를 일으킨 전설의 사학.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총 14개, 학생 수만 3만6400여명에 이르던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사학. 백선엽의 ‘선’ 자와 동생 백인엽의 ‘인’ 자를 따서 만든 학교법인 선인학원이다.

 

당시 신문이 ‘인천의 무법자’로 부른 백인엽은 1981년 3월23일 업무상 횡령, 배임수재, 건축법과 중기관리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그는 검찰에 선처를 구하며 본인의 처와 대한변협 회장이 입회한 자리에서 전 재산 9억원과 선인학원 소유 26만평 등을 모두 자진 헌납하겠다는 양도헌납서를 작성한다. 법무부는 선인학원에 관선이사를 선임해 사태를 수습하길 바란다고 문교부(현 교육부)에 통보하고, 1981년 4월7일 문교부는 선인학원에 7명의 관선이사를 파견해 학교 정상화와 국공립 전환 방향을 논의하기 시작한다.

 

4개월 뒤인 1981년 8월, 문교부는 백인엽의 형인 백선엽을 선인학원 관선이사로 추가 선임한다. 동생이 사학비리를 저질러 물러난 학교에 형이 관선이사로 온 것이다. 선인학원 학교 운영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백선엽 쪽은 주장해왔지만 사실은 달랐다. 2년 뒤엔 전두환의 처삼촌인 이규승을 정이사로 임명하면서 국가 헌납은 없던 일이 됐다. 신군부와 선인학원 쪽의 커넥션을 의심해볼 만한 대목이다.

 

뒷배가 있다는 생각 때문일까.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동생 백인엽은 ‘선인학원에 헌납한 재산은 강박에 의한 것’이었다며 반환 소송을 제기한다. 그즈음 대학 운동부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호교회는 백씨 퇴진을 요구하는 학생들을 못이 박힌 각목과 쇠파이프 등으로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분노한 학생 3500명이 자퇴서를 쓰며 밤샘농성에 들어가고 인천시민 7만명이 정상화 서명운동에 참여하는 등 선인학원 문제가 사회문제로 확대되자 문교부는 종합감사에 돌입하고 대검찰청은 수사에 착수했다. 학교 14개를 세울 정도로 승승장구하던 선인학원은 결국 1994년 해산된다. 모친 이름의 초등학교는 폐교되고, 백선엽 백인엽의 호(號)로 교명을 지은 고등학교 2개 등 중등교육기관은 인천시 교육청 관할의 공립이 되고, 고등교육기관인 인천대는 시립을 거쳐 국립대가 됐다.

 

당시 문교부는 다른 분쟁 사학 구성원들도 국공립화를 요구할 수 있다는 이유로 선인학원 시립화에 반대했다. 내무부(현 행정안전부)는 지방공무원 증원이 곤란하다는 입장을 냈고, 경제기획원(기획재정부)은 신규 공립학교 14개를 지원할 예산 증액이 어렵다고 했지만, 첫 육군 대장이 관여한 학교는 그렇게 국공립화가 됐다.

 

2017년 교육부가 ‘사학혁신추진단’을 만들며 발표했던 슬로건은 ‘비리사학은 엄단하고 건전사학은 육성한다’였다. 나는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문구를 40년 전에 만들어진 문교부 사학정책 기조 문건에서 발견했다. 세상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교육 당국이 대학 인가를 너무 경솔하게 한 책임이 있다. 비리재단 문제와 기부금 유용 문제로 행정처분을 당한 학교가 한둘이 아니다. 신성한 교육계에서 이러한 불상사가 발생된다는 것은 너무나 한심한 치욕이다. 교육보다도 대학을 경영한다는 영리 목적으로 한 까닭에 당초 인가를 받을 때부터 부정한 수단이 있었다. 대학이라는 미명하에 많은 청년을 기만하고 착취하는 사기 대학, 정리하기를 요망한다.”

 

1948년 10월19일치 <동아일보> 기사는 선인학원 같은 비리사학의 기원을 보여준다. 학교재단 소유 토지는 정부 수립 직후 만들어진 농지개혁법과 1951년 제정된 문교재단 소유농지 특별보상법에 따라 농지개혁 대상에서 제외됐다. 선인학원처럼 돈벌이를 위한 교육기관이 태어난 계기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953791.html#csidx9c617b50e8bd363b2254d745b7b31ee onebyone.gif?action_id=9c617b50e8bd363b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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